제2의 노아 홍수를 막자!!
제2의 노아 홍수를 막자!!
  • KMC뉴스
  • 승인 2014.03.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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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햇빛발전협동조합 창립감사예배

기장햇빛발전협동조합 창립감사예배가 3월 21일(금) 오후 2시 광산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1부 감사예배와 2부 기념강연 및 축하의 시간으로 나뉘어 열렸다.
1부 감사예배는 기장햇빛발전협동조함 이사장인 이 진 목사가 예배 인도를 하였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 남신도회 광주연합회장인 임채운 집사님이 대표기도를 하였다.
설교를 맡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남노회장 윤흥성 목사는 요한복음 1:5절 말씀 본문으로, “하나님의 빛”이라는 주제로 설교하면서 태양은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이며, 진정한 빛은 성부, 성자, 성령님이라고 전하였다. 또 태양빛의 속성인 적외선, 자외선, 가시광선은 하나님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고 말씀을 전하셨다. 마지막으로 경상남도의 민들레학교를 소개하시면서 친환경에너지인 태양을 쓰고 가르치는 모범적인 공동체를 소개해 주었다.
축도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광주노회장이신 김성룡 목사가 맡았다.

2부 기념강연 및 축하시간에는 기장햇빛발전협동조합 상임이사인 윤인중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제일 먼저 한국 기독교장로회 총무인 배태진목사의 축사 있었다.
배태진 목사는 에너지를 주요 생산하고 있는 화석에너지와 원전에너지는 환경을 급속도로 파괴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탐욕으로 벌어진 일이며, 제2의 노아 홍수를 불러오고 있다고 증언했다. 반면에 햇빛에너지는 온전하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내려준 은혜의 에너지이며, 탐욕으로 일그러뜨린 창조세계를 회복시킬 좋은 대안이라며 축사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이어, 서울대 명예교수인 장회익 교수의 특강이 이어졌다. 장회익 교수는 강연에서 환경의 파괴는 온생명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몸을 괴롭히는 것이며, 도덕적 신학적으로 범죄를 범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아야한다고 말하였다. 이에 한 가지 대안인 태양에너지의 활용은 초기 자본이 적지 않게 들고 단번에 많은 에너지를 얻지는 못하지만, 만나와 같이 하루 쓸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성서적인 에너지임을 이야기 하였다.
이날 축하공연으로 성악 전공자인 장성태 집사의 공연과 기장 농목 노래패(채일손, 홍요한, 유현승)의 공연이 있었다.

다음은 이날 강연문 전문이다.

햇빛발전이 가지는 문명사적 의미

장 회 익

한 사람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어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물음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물음이지요.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란 '궁극적 관심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때 말하는 관심사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물론 원론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고, 각각의 개인이 항상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항상 이를 추구해나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유년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성숙한 단계에 이르러서도 특별한 계기를 맞이하지 않는 한, 한 개인이 이러한 물음을 명시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답을 독자적으로 추구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설혹 의식적으로 이러한 물음을 떠올릴 때라 하더라도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나가기보다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신 일이 있나요? 아마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폴 틸리히가 말했듯이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당연히 이러한 궁극적 관심사에 마주칠 것이고 그렇다면 이를 진지하게 묻고 그 해답을 추구해야 할 것인데, 왜 그렇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기독교가 이미 오래 전에 그 해답을 마련했고, 따라서 이제는 오직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하는 것만 결정하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는 이미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물음이 들어있고, 또 그 대답이 들어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면서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맞는 말이라는 것은 성경이 기록될 무렵 그리고 그 이후 오랜 기간 당시 최선의 지식과 최선의 노력을 동원하여 이러한 물음을 묻고 또 그 해답을 얻어낸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 안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틀린 말이라는 것은 이러한 해답은 항상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것이어서 이 물음을 계속 추구하고 새로운 해답을 추구하지 않는 한 부적절한 해답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는 이 물음의 앞부분 곧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인가?”하는 데 대해 놀라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기에, 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삶의 길에 들어설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이 물음을 새롭게 묻고 우리가 기왕에 가진 해답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를 계속 확인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이 물음은 과학과 신학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앞부분 곧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인가?”하는 것이 과학의 물음이라고 한다면, 뒷부분 즉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것은 신학의 물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 자신은 한 과학자로서 당연히 이 물음의 앞부분 즉 “나는 어떠한 세계에 있는 어떠한 존재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우주와 생명,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것에 관해 제가 그간 깨달아 얻은 내용은 『물질, 생명, 인간』(돌베개, 2009)이라는 책과 최근에 나온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한울, 2014)라는 책 안에 대략 정리되어 있는데, 그 가장 핵심적인 내용만 이야기 한다면 생명이라는 것이 하나하나의 낱생명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전체로 묶여진 ‘온생명’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렇게 이해하고 나니까 그 다음 문제 즉 “그렇기에 나는 어떠한 자세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전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앞으로 신학 쪽에서 깊이 있게 정리해주어야 할 부분입니다만, 우선 내 생명 그리고 나 자신이 내 몸 하나 그리고 나 개인이 아니라 바로 온생명이고, 또 온생명이 곧 ‘나’이므로, 나는 온생명의 주체로서 온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로 온생명의 건강을 보살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간 우리가 기독교를 통해 배워온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웃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흔히 주변에 있는 이웃 사람들, 좀더 넓게 보아 인류 전체를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나 온생명의 시각에서 보면 온생명이 이미 내 몸에 해당하니까, 온생명 전체를 내 몸과 같이 여겨야 하는 것이지요. 단지 그 동안은 내 몸과 같이 여겨야 할 이웃이 어디까지 뻗치고 있는 것인지 몰랐기에 그 가운데 일부만을 떼어내어 이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많은 죄를 짓고 있었지요. 내 몸인 온생명 곧 주변의 자연을 너무도 많이 훼손하고 병들게 해서 이제는 우리가 이 안에서 살아가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지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죄가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오직 환경 문제라고 하는 하나의 풀어야 할 기술적 사회적 과제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신학적 문제만이 아닌 기술적 사회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를 도덕적 신학적 문제로 보는 것과 아울러 기술적 사회적 문제로서의 해법도 함께 찾아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 저는 간단히 ‘에너지’에 관련된 문제 만에 국한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대 문명이 에너지 활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와 이른바 원자력이로 하는 핵에너지를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화석 연료는 많은 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여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고, 핵에너지는 그 자체의 위험성 뿐 아니라 수 천, 수 만년에 이르도록 관리해야 하는 방사능 물질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요행이 우리가 괴멸적인 사고를 면한다 하더라도 이후 수 천 수 만 세대가 이를 관리하기 위해 불침번을 서야하는 부담을 남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단 한 가지 남아있는 대안은 적절한 다른 에너지원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인데, 여기에 정말로 적절한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바로 햇빛 에너지이지요.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는 너무도 친근한 에너지입니다. 지금 제가 혀를 놀려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혀는 무슨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일까요? 바로 햇빛 에너지입니다. 햇빛이 녹색 식물의 잎에 떨어지고 그 안의 엽록소가 이것을 유기화합물 속에 저장하고 내 몸이 이것을 분해하면서 에너지를 내어 내 혀가 움직이는 것이지요. 녹색 생물과 내 몸의 기막힌 협동 작업이 이렇게 햇빛 에너지를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온생명은 지난 수 십 억년에 걸쳐 햇빛 에너지만만을 활용해 잘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녹색 생명체들에 의한 이 놀라운 활용 방법 이외에 이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별다른 방식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이르러 반도를 이용하여 햇빛을 유용한 전기 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햇빛 발전이지요. 이것은 정말 가정이나 교회와 같은 작은 단위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하고 아무 부작용도 없는 ‘착한’ 기술입니다. 오직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한꺼번에 마련하기 어렵고 또 저장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에서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만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나왔을 때 먹을 양식이 떨어졌는데, 하늘에서 ‘만나’라는 신기한 식품이 떨어졌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그 양도 많지 않고 애써 모아두려 해도 바로 상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어 누가 독점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햇빛 발전도 흡사합니다. 잘 아껴 쓰면 무척 요긴하지만 욕심껏 쓰려면 모자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아껴 써야 하며 또 이렇게 아껴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번에는 에너지를 아껴 쓸 수 있는 또 한 가지 착한 기술이 생겨났습니다. ‘파시브 하우스’라는 건축법이 그것인데요, 이 건축법을 활용하면 거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 난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햇빛 발전이 햇빛을 이용하는 능동적 방식이라면 파시브 하우스는 햇빛을 이용하는 수동적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시브’이지요.) 그러니까 파시브 하우스를 짓고 햇빛 발전을 잘하면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생태적 생활 방식에 한 걸음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에도 잘 부합되는 올바른 생활양식이지요.

제가 지금 다니는 천안의 한 교회는 이제 막 교회 건물을 신축할 계획인데, 바로 이러한 건물을 지어 생태공동체의 한 모형을 만들어나갔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지요. 크게 많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정도예요. 이것은 비단 제가 다니는 교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느 가정이나 교회나 다 이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바로 초기 비용 때문에 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하나의 해법이 바로 협동조합 아이디어입니다. 한 개인이, 그리고 한 교회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여러 사람이 출자한 협동조합에서 지원하고 그 수익을 나누어 가지자는 것이지요. 개인으로는 못하지만 조합으로는 할 수 있기에 일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개인 한 교회를 돕는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환경을 살리고 문명을 살리고 온생명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개인은 그저 힘닿는 대로 5만원이고 10만원씩만 내어도 이것이 모여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뚫고 나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현대 문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리고 우리가 지금 낙망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이 햇빛발전 협동조합이라는 아주 작은 샛길을 하나 열어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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