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42일간 영혼의 여행
세월호 1주기, 42일간 영혼의 여행
  • 김홍술
  • 승인 2015.04.21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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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40일 단식현장 그후...(1)
▲ 좌측 김홍술 목사와 우측 방인성 목사

21세기 대한민국에 기가 막히고 억장이 끊어지는 참혹한 사태가 났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라고 명명하였나 보다. 아니 이 참사는 ‘세월호 학살사건’이라고 말해야 할 사태였다. 전 국민이 보는 앞에 두어 시간 만에 그 큰 여객선 안에 304명을 고스란히 가둔 채 뒤집어져 침몰해 가는 광경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선장과 선원들만 외부와 교신 후 빼내고 대부분 어린 고등학생들에겐 가만히 그 자리에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 놓고는 차가운 바다 물속에 가라앉혀버렸다. 전대미문의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사고에는 꼬리를 무는 의혹과 미스터리들만 억지로 봉합한 채 해경청장이나 해수부장관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대통령까지도 현장과 빈소에 까지 찾아와서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해경을 해체 하겠다’면서 ‘국가개조의 기회로 삼겠다’ 했고, 눈물까지 보이며 약속하고선 청와대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 책임을 지겠다고 사임한 국무총리는 재임명되었고, 유가족의 애타는 시간만 흘렀을 뿐 여당과 대통령은 점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허무하게 보내버리고도 수장된 실종자들 수색 수습에도 우왕좌왕만 할 뿐이었다. 결정적인 수색 수습의 다이빙벨 투입을 놓고도 이해할 수 없는 오락가락을 번복하다가 결국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메이저 방송사들을 통해 시선을 그 바다로부터 옮겨 선박회사인 ‘청해진 해운’과 그 경영진에다 맞췄다. 해운사와 깊이 관여된 이른바 ‘구원파’라고 알려진 종교단체는 ‘한국복음침례회’였고, 교단의 대표인 ‘유병언’씨 ‘몰이’에만 초점을 맞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만 조린 채 팽목항으로 달려 가보지도 못하고 연일 유병언 몰이 방송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몇 개월이 흐르는 동안 유가족들은 진도 팽목항에서 상경하여 국회 앞으로 청와대 앞으로 다가갔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호소하고 국가 원수인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올라 온 것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고 답답해하였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에 돌입한 유가족들의 원통함에 공감하였고, 지방마다 세월호 단식 농성장이 생겨나고 거리마다 노랑리본의 물결을 이루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500만 명 이상의 자발적 서명운동도 일었다.

유가족 중 ‘유민아빠’로 불리는 김영오씨의 단식이 30일이 넘어서고 38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온 국민이 시청하는 TV 화면에 마른 풀대처럼 야윈 몰골로 비척거리며 지팡이에 의지해 청와대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대통령님 제발 만나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를 안고 청와대 앞까지 갔으나, 아무런 응답도 듣지 못한 채 경호직원들 벽에 막혀 발길을 돌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쓰러졌고 병원으로 응급 후송되었으나 단식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 자신의 한 목숨 던져 진실을 찾겠다는 일념에 찬 단식과 이를 어떻게든 중단시키기겠다는 끈질긴 회유들,,, 게다가 그의 개인사를 헤집고 폄훼하는 소리들이 난무하였다.

결국 김영오씨는 4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정치권은 그동안 정점으로 치닫던 ‘진실규명’요구에 절절매다가 김영오가 단식을 중단하자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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