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하룻밤이 지났다
병원의 하룻밤이 지났다
  • 김홍술
  • 승인 2015.06.15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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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40일 단식현장 그후...(15)

병원의 하룻밤이 지났다. 광화문 광장의 엄청난 소음과 매연에 익숙해 있다가 조용한 병실에 오니깐 방 목사는 적응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잠도 잘 이루지도 못하고 머리도 띵하다고 하였다. 난 그냥 좋고 너무 과분한 호텔인데... 다행히도 이틀째부터는 괜찮다하니 마음이 좀 놓였다. 이틀째 날부터는 방문객이 다시 줄을 잇는다. 광화문 단식장에 왔던 분도, 일부러 지방에서 올라 온 분도, 간간 금일봉을 내 밀면서 보식과 건강회복에 꼭 쓰시라고 한다. 참으로 사랑의 빚이 점점 늘어만 간다.

이틀째 날 오후 특별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허름한 차림에 50대의 두 사람은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이라는 동네의 쪽방촌에서 나를 보고자 왔다. 그들은 노숙자와 쪽방 거주자 등 바닥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된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리더들이었다. 방 목사는 흥미롭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인간 바닥에 너부러져 있다가 겨우 일어서서 하루살이 생활을 하는 그들이, 1억이란 거금을 출자하여 적은 이자로 한 사람 당 5만에서 50만원까지 신용대출하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방 목사가 회수율을 묻자 처음에는 50~60 퍼센트였지만 점점 늘어 지금은 80 퍼센트에 이른다고 하였다.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 건 ‘못 받는 돈은 어떻게 하느냐’의 질문에서였다. 그 둘은 서슴없이 ‘없어서 못 받는데 어떻게 해요. 기다리는 밖에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 두 목사는 그 두 방문객이 돌아간 후 아마 주님이 천사를 보낸 것 아닐까 하며 한동안 멍하였다.

사흘째 저녁때 조심스레 문이 삐끗 열리더니 환한 웃음으로 조계성 원장이 찾아왔다. 우린 앉자마자 떨어져 있다 만난 아이들 마냥 신나 지난 3일간의 병원생활을 앞 다퉈 보고하였다. 조 원장도 아침마다 광화문 광장을 들르다 며칠간 허전하고 보고 싶었다면서, 두 목사님들이 제 마음자리에 오래 남아있을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손에 뭔가 선물을 들고 왔는데 궁금해 열어보니 발목용 모래 주머니였다. 다리의 근력을 올려야 한다면서 수시로 차고 다니면서 운동하라고 권한다. 조 원장은 일전에도 단식 40여일이 다가오자 예쁜 보식용 휴대도시락 두 개를 사왔었는데, 자상하고도 세밀한 배려와 사랑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다.

늦은 저녁시간, 방 목사는 교우들 중 중견멤버들이 여럿이 왔을 때 아주 심각한 의논하는 걸 엿들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교회가 인탤리켄챠 중심으로 뭉쳐지고 가난한 약자들이 주변으로 밀려 나갔다는 걸 깊이 반성했다면서, 기존의 중심멤버들이 그들을 중심주체로 세우자고 하였다. 마치 온 국민이 상처받은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듯 목회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방 목사는 얼마 안 남은 나의 목회는 ‘갈릴리에서 만나자’라는 주님 마지막 유언에 따라 ‘갈릴리 목회’를 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호소하였다. 방 목사는 목사의 자리인 목회로부터 정직하게 돌파해야, 나아가 한국교회와 조국사회에 할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용단을 가졌을까? 가슴에 뜨거움이 인다. 두고 온 나의 작은 자들과의 공동체 ‘부활의집’이 생각난다.

햇볕 따스한 날 우리 둘은 나란히 링거 대를 잡고 옥상 하늘공원에 나갔다. 공기도 싱그럽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동네가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한가롭게 햇볕을 쪼이는 일이 얼마만인가! 우리 둘은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고, 이제 새 몸 새 영혼으로 거듭난 이후의 살아갈 날들을 그려보았다. 예수께서 변화산(예수가 올라가 옛 선지자를 만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는 높은 산 정상에서 제자들에게 이제 내려가자고 한 것처럼, 우리는 이제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다른 동지들 그리고 민중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고... 손잡고 어깨 걸고 이 어둠 뚫고 새벽을 기어이 열자고 하자. 맘몬과 거짓의 영과 흑암의 권력의 벽이 철옹성 같지만, 기죽지 않고 정직히 대면할 수만 있다면 이미 우린 이긴 싸움이이라고 말하자.

5일간 연일 달고 다니던 수액 줄이 떨어졌다. 마치 탯줄 떨어진 아기처럼 젖 떨어진 아이처럼 뭔가 성장하는 단계를 느꼈다. 때맞추어 죽도 점도가 뻑뻑해졌고 4,5일째부터는 바야흐로 씹을 수 있는 음식이 조금씩 올라왔다. 참 진도가 빠르다. 나는 식욕이 너무 왕성하여 방 목사가 남기는 것까지 해 치웠는데, ‘자기, 너무 과식하는 거 아냐? 조심해~’ 하면서 걱정스레 쳐다본다. 나는 애써 ‘형, 난 운동 많이 하잖아. 형도 운동 많이 하면 잘 먹을 거야.’ 하며 궁색한 대답으로 응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너무 잘 먹고 먹는 양도 더해서인지 5일째 되는 날 새벽 시원스레 첫 배변을 했다. 그리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나는 자랑스레 배변을 했다고 으스댔다. ‘야! 자기 부럽다. 좋겠네. 난 기미가 없어.’ 하면서 목소리가 주눅 든 양 깔렸다. 우리 둘은 이렇게 애들처럼 천진스럽게 정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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