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은 평범한 농부입니다.
먹는 문제를 담당하던 사람입니다.
욕심도 있고, 열정도 있고, 승부욕도 있습니다.
아량이나, 자비심은 없어도, 이해와 사랑은 부족해도 열심히 성공을 꿈꾸며 사는 농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아우 아벨이 있었습니다.
물론 가인도 알고 있습니다.
아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내 것이 우선이었고, 내 미래가 우선이었습니다.
나누어야 할 것에 인색하게 되었고, 돌봄과 배려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예배를 드린 후 미움까지 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삶을 만들어가는 자신보다는
게을러 보이고, 열정도 없는 것 같은 아벨을 더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깐죽대는 아벨이 싫어졌고, 분노와 승부욕이 발동하면서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인은 이 모든 일을 덮어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사고였다고, 실수였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어쩌면 이 질문은 가인에게 회개와 고백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이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 인줄 아시느냐고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가인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내 생명도 내 소유도 내 것 인줄 알았습니다.
동생의 생명도 동생의 소유도 동생 것 인줄 알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그분이 참 소유자임을 몰랐습니다.
소유자 되신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들은 관리자임을 잊었습니다.
내 것 인줄 알았기에 내 마음대로 사용했고,
그의 것 인줄 알았기에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대답했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 인줄 아시느냐고?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지키는 자입니다. 가인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우를 지키는 자이고, 참 소유자는 하나님이심을! 그렇지만 교만해지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커가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생각납니다.
I am a keeper! of my brother and sister!
목사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교회와 교인들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가장은 악한 세력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부부는 서로를 지키는 자 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엄정하게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맡겨주신 세상은 우리들의 지킴을 통해서 이어져가기 때문입니다.
I am a 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