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책임
무한책임
  • 이구영
  • 승인 2017.09.29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큰아들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남 지사의 큰 아들은 3년 전 즈음에도 군대에서 후임병 폭행과 추행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남경필 지사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아들이 법에 따라 적합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아들로 인한 아버지가 받을 상처는 거의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의 아들 장용준 군은 Mnet '고등래퍼'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SNS 등을 통해 조건만남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 의혹으로 인해서 아버지 장 의원이 사과를 하고, 모든 SNS 활동도 접었습니다. 당 대변인을 비롯한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고, 아들 장용준 군도 프로그램을 하차했습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2014년 지방선거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정몽준 전 의원은 출마와 동시에 막내아들의 SNS로 곤경에 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정 의원의 아들은 세월호 유족들에 대해 ‘미개하다’고 비판을 해서 파장이 일었고, 아들의 잘못으로 아버지는 서울시장과 정치인생을 포기해야 만 했습니다.

도데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요?
18세가 넘어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고, 독립이 가능한 자녀들 임에도 왜 부모들은 평생 발목을 잡혀 살아야 할까요?

자녀는 백지상태로 태어납니다.
물론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나지만 이 유전자가 성숙해 지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역시 부모입니다.
마치 새로 구입한 컴퓨터에 무슨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느냐에 따라서 그 컴퓨터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처럼,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에 무슨 앱을 깔아 놓았느냐에 따라서 이 스마트폰이 게임기가 될지 전화기가 될지 스마트폰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머릿속에 처음 무엇을 심느냐고 중요하고 그 심는 가장 큰 입력자가 부모이기에 부모는 무한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아기, 유아기에 거의 모든 인성과 삶의 방향은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유치원 교육이 중요하고, 태교육이 중요하고, 임산부가 중요하고, 유치원 교사들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에도 자녀 때문에 치명적인 저주를 받고 망신을 당하는 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셈, 함, 야벳입니다.
창세기 5장 32절과 6장 10절, 7장 13절에 보면 노아의 아들들의 이름을 셈, 함, 야벳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장남이 셈이고, 둘째가 함이고, 셋째가 야벳이라는 뜻도 됩니다.
노아는 세 아들과 함께 방주를 지었고, 방주에 들어갔고, 같이 생활하다가 방주 밖으로 나왔습니다. 폐허가 된 공허와 흑암과 어둠의 땅에 노아는 그의 부인과 세 아들 그리고 세 명의 며느리와 함께 새로운 창조질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힘든 세월을 몇 년 보냈습니다.
나무를 심고, 곡식을 심고, 무너진 곳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건축하며 외롭고 아프고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손자/손녀들이 태어났고, 농사도 수월해 졌습니다.
포도나무가 감람나무가 무화과나무가 석류나무가 열매를 내기 시작했고, 밭농사도 수월했습니다.
피곤하고 외롭고 지친 노아는 어느 날 포도를 따서 묵혀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취하도록 마신 후 잠이 깊이 들었습니다.
잠결에 몸은 점점 더워졌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깨어나 보니 잠이 들던 때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옷을 이불처럼 만들어서 덮어준 흔적이 있었습니다.
노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하! 내가 실수를 했구나! 허물을 보였구나! 자녀들에게 못 보여줄 것을 보여주었구나!
내 실수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지만, 누가 내 허물을 보고 갔는지, 그 허물과 죄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노아는 세 아들을 불러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난감한 상황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라는 손자가 할아버지의 천막에서 벗고 자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서 할아버지의 노망, 할아버지의 추태를 낱낱이 떠버리고 다닌 것입니다. 소문은 소문을 물고 돌아서 며느리들의 귀에도, 손자/손녀의 귀에도 들어갔고, 아들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의 반응이 각기 달랐습니다.
함은 아들 가나안과 별반 차이가 없이 아버지의 허물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을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이 나의 허물과 같이 느껴져서 이 사태를 속히 수습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존경하는 아버지의 허물을 가려주기 위해서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 노아의 천막으로 들어갔고, 아버지의 옷으로 아버지의 드러난 하체를 가려 주었습니다.

사건의 전모를 들은 노아는 창피하기도 했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둘째 아들 함이 자신의 허물을 가려주고, 아들 가나안의 입단속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가려준 셈과 야벳을 축복합니다.
그의 저주와 축복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창 9:25-27]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본문을 읽으면서 또 다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무한책임을 통감합니다.
가나안이라는 아들의 잘못으로 함과 그 가문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철없는 아들 때문에.....
부모는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허물을 가려주라고! 죄를 용서해주라고!
그런데 이 교육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혹은 가르침을 받았어도 실천하지 않은 가나안 때문에 그 가문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물론 부모혼자 아이의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교육기관도, 주변의 어른들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과 사회는 그 일차적 책임을 부모에게 묻습니다.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에 대하여 당신은 책임이 없다고 면책을 해주고 국가가 부채를 대신 갚아주면서도, 자녀의 잘못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는 부모에게 무한책임을 명령합니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자녀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도 없는 현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오늘도 우리는 무능력을 고백하며, 한계를 고백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여! 우리의 자녀들의 앞길을 인도해주옵소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지만, 주여! 저들을 주님께 맡기오니 주여 살펴주옵소서!
바른 생각, 바른 신앙, 바른 행동, 바른 언어, 바른 소망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부모의 무능력과 무지와 한계를 절감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여! 인도하옵소서!

자녀를 위한 중보기도가 더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