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복과 축복 (마 5:3~12)
2. 복과 축복 (마 5:3~12)
  • 주성호
  • 승인 2018.01.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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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 받기를 좋아한다. 특히 한국인은 다른 민족에 비해 복을 좋아한다. 집안에 들어서면 복조리, 복(福) 자로 장식된 가구들, 식기, 수저, 상들이 있다. 여자들은 복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복의 옷고름, 고무신에도 온통 복으로 두른다. 옛날 남자들은 복 주머니를 차고 다니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능한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여 만족한 복을 누리기를 원한다.
성경에도 복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구약에는 신명기 28장의 복, 시편 1편의 복 등이 있고, 신약에는 예수님의 8복, 바울의 로마서에 나오는 3복, 요한계시록에도 7복이 나온다. 구약의 복이 이 세상에서 성취되는 복을 강조한다면, 신약의 복은 이 세상 즉 지상에서의 육체적인 삶에 대한 보상보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종말적 기쁨과 보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물질적 축복보다는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나, 재난을 당한 자들 또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오히려 축복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역설적 복의 개념). 성도들의 복에 대한 개념이 바르게 설정될 때 올바른 인생관이 설정되고, 예수님도 제대로 믿게 되며, 진정한 하늘의 복도 받게 되는 것이다.

첫째: 복에 대한 바른 이해

한국 사람들의 신앙의 저변에 깔려 있는 복의 개념과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 세상의 축복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만연한 이 땅에 일찍이 무속종교, 유교, 불교 또는 도교 등이 유입 되었어도 자연숭배, 조상숭배. 샤머니즘의 형태는 계속 유지, 계승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복의 개념은 두 가지 관점으로 풀이된다.

첫째, 소극적으로는 삼재팔난(드災八難)을 벗어난다는 의미에서의 복이 있다. 삼재는 다시 둘로 나누어지는데, 대삼재(大三災)인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와 소삼재(小三災)인 도병재(刀兵災), 질역재(疾疫災), 기근재(機僅災)가 있다. 팔난(八難)은 지옥 등을 가리키고, 팔고(八苦)는 생노병사(生老病死) 등을 포함한다. 그래서 자연적, 사회적, 개인적인 재액에서 벗어나는 것을 복으로 이해했다.

둘째, 적극적으로는 5복(五福) 또는 3복(드福)을 말하기도 한다. 오복이란 서경(書經)에서 언급된바 수(壽), 부(富), 강녕(綱領), 유호덕(牧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하며, 삼복이란 연명장수, 부귀영화, 평강안녕을 말한다. 따라서 복을 얻는 신앙 행위도 두 가지로 분류된다. 소극적으로는 재액을 제거하기 위해 푸닥거리, 액막이, 나래, 부적 등이 행해지고, 적극적으로는 성공제(成功祭), 기은제(祈恩祭), 고사. 굿 등 기복제(祈幅祭)가 행해진다. 수천 년 동안의 이러한 신앙 배경을 가진 이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질 때. 기독교 신앙이 기복 신앙(祈福信仰)의 영향을 안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믿어도 푸닥거리식(式)이 나오게 되어 있다.

둘째: 축복(祝福)의 개념

축복(祝幅)이란 한문자로 보면 '祝'~빌 축, '幅'~복 복자로서, '복을 빈다'는 뜻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축복이란 복이 임하기를 빈다는 뜻이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이여 00를 축복해 주소서"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께 복이 임하도록 빌어 달라는 뜻이 되니 모순된 표현이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복을 내려 주시는 분이시지 결코 복을 빌어주는 분은 아니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축복'해 주시는 분은 아니다. 엄격히 구분하여 말한다면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축복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 관련 성구들을 찾아보자.

창 12:3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라라"고 하셨고, 민 6:23~24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라고 하라고 명령하셨다.
창 27:25을 보면 축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이고, 잠 30:11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으며, 왕상 1:47은 왕이 백성들에게 하고 백성이 왕에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또한 히 7:7은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고 말한다(보편적 의미). 정리하면 '복'은 어떤 누구도 줄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축복'은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조심해서 사용할 언어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마치 부흥사가 복을 내려주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는, '축복 기도'라는 말은 한 마디로 잘못된 말이다.

셋째: 8복의 의미

복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베아티튜도'(beatitudo)에서 유래되었고, 영어로는 '뷰티튜드'(beatitude)로서 일종의 기쁨을 얻거나 축복을 받기 위한 특정한 조건의 선언을 뜻한다. 영어 성경에는 마 5:3이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라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는 선언문(기원이라기보다는)으로 번역되어 있다. 공동번역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산상 수훈을 '축복문'(祝福文)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10계명으로 기본 율법을 주셨는데, 모세 홀로 시내산에 올라 오도록 하여 신비한 방법으로(우렛소리 가운데) 복과 저주를 함께 기본법으로 받았다. 신약의 산상 수훈에서 시사한 새 율법은 평화로운 가운데 많은 사람을 상대하여 말씀해 주셨고 복으로 시작했다.
마태복음의 복에 대해서도 우리는 보통 8복이라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다. 어거스틴은 7복이라 하였고, 암브로스(Ambrose)와 플루머 (Plummer)는 8복, 그리고 알렌(Allen)은 9복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 암브로스 이후 다수가 8복설을 따른다. 8복은 세 부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① 인생에서 불행한 운명을 지닌 개인들이 언급된다. 신앙의 전통적인 것을 이어 받았으나,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급의 사두개인에 의해 상속받은 것을 빼앗겨 가난해지고 애통해야 될 사람들에게 받는 복이다.
② 현재의 긴장에서 벗어나는 데는 자비, 순결, 화평을 지녀야 함을 가리킨다.
③ 아무리 고난이 극심해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당하는 현재적 상황의 긴장들을 해결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선물을 내려 주시겠다는 복의 선언들이다. 그러므로 8복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서 소유되는 어떤 복보다 더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복이다. 또한 8복은 모두가 개별적인 성격을 띤 것이 아니고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 8복은 성숙한 신앙인이 소유해야 할 필수적인 것으로서, 그것을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따라 신앙의 성숙성을 규정지을 수 있다.
구체적인 것은 다음주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복과 축복에 대해 구분하는 것으로 끝내자. 아무쪼록 복 받기에 합당한 성도가 되기 바란다.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말씀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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