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세트를 구입했더니...
드럼세트를 구입했더니...
  • 민돈원
  • 승인 2018.01.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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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 또한 예수님이다. 이러한 교회존재 이유는 복음전파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1:38) 한편 성전(聖殿)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성소)이다. 이곳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기위해 구별된 거룩한 전이다. 한편 우리 몸이 성전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전은 거대한 독립기념관이나 박물관, 영화관, 문화예술회관, 대웅전과는 그 지어진 목적과 용도자체부터 다르다. 그래서 복음이 전파되었을 초기에 세워진 교회는 00교회라고 하기보다는 집 당(堂)자를 써서 00예배당이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지역이나 마을의 수호신으로 만들어 섬기던 그런 성황당과는 전혀 다른 격이다. 따라서 사실 이러한 교회나 성전을 신학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구별이 되어야 하겠지만 흔히들 종합적으로 ‘예배드리러 교회 간다.’ ‘성전에서 예배드린다.’라고 이해한다. 즉 교회는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 때 교회로서의 존재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초기교회는 알다시피 예배당이 비록 지금과 같이 고급스럽고 현대식 건물이기는커녕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앉는 초라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예배당일지라도 꽉 찬 경우가 흔했다. 한마디로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이용시설이 아무리 불편해도 예배하는 마음만큼은 최상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 예전보다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마음은 결코 나아졌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기록된 말씀, 복음이 문제인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예수님이 오늘의 문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문제인가?

좁혀보면 믿는 우리 문제라고 스스로 답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 그것은 예배가 잘 드려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예배당이 보는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거대하고 표시나리만치 현대식으로 건축했다고 해도 그 교회 성도들이 예배 하지 않는 건물로 그쳤다면 얼마든지 유럽교회나 최근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슬람이나 불교 등 타 종교내지는 이단들에게 팔리고 심지어 술집이나 무도회장 등으로 팔릴 수밖에 없다.

출생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예배인원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기존교인들이 제대로만 예전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먼 길을 걸어서 올만큼 예배드릴 마음을 1/10이라도 가졌다면 결코 줄어들 이유가 없다. 무슨 일만 생기면 빠질 이유로 삼는 것이 문제이다. 여행가고 놀러가는 데 자기는 물론 자기가족, 자기애들 사랑한답시고 데리고 가는 것쯤은 이제 문제도 아니다. 특히 청년들이 주일 낮 외에 저녁예배나 수요예배 잘 나오는 경우는 그들만의 따로 예배가 마련되어 있는 시간외에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즉 주일공동예배로 같이 드리는 교회의 경우 청년들이 주일 낮 외에 저녁(오후)이나 수요예배 나오는 예는 극히 드물다. 나는 이러한 예를 서울이든 소도시이든, 그리고 농촌이든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보았다. 이것은 지금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사인 나로서의 가장 큰 고민과 소망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예배가 잘 드려질 수가 있을까?’,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주님을 만나 변화된 삶으로 복된 인생을 살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 로 압축된다.
이보다 더 큰 소원은 없다. 이것이 내가 목회하는 이유이고 목회자로 살아야 할 이유이다.

이에 그 중 한 가지 청년들, 젊은이들이 주일저녁만이라도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이 없을까를 생각했다. 동시에 장년층들 역시 그 파급효과로 지금보다도 저녁예배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를 모색했다. 그것이 청년들이 가진 재능이나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해보자라는 것이었다. 이에 교회에 구비되어 있지 않던 드럼 세트를 구입했다. 또 찬양싱어로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원들을 상담하여 그 일을 맡도록 했다. 그런 청년들이 예배자로 참여를 하게 되었다. 드럼을 치고 찬양을 인도하고 악기를 연주하게 되니 그들이 할 일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니 사전에 모여 연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꽃이 있으면 꿀벌과 나비들은 어디서 알고 왔는지 그 꽃으로 날아든다. 그러나 꿀벌과 나비가 있어도 꽃이 없으면 그들은 있어도 안 보인다. 예배를 수동적으로 참여하는데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드럼을 돈이 들더라도 곧 바로 구입했더니 칠 수 있는 청년이 준비되어 있었다. 찬양싱어를 세우니 그 재능과 끼가 살아났다. 교회는 물질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면 잘 된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써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어느 때이든 제자리에서 역할을 잘 해주기만 하면 잘 된다.

꽃이 있으면 반드시 나비가 날아드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예배가 꽃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야 거기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기 때문이다. 예배가 잘 드려져야 교회가 문을 닫지 않는다. 예배가 잘 되어야 선교도 할 수 있다. 예배가 잘 드려져야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 있고 성도들의 삶이 힘과 활력이 넘친다. 교회들이 예배가 잘 드려지면 지역사회가 교회에 도움도 요청하고 이 민족이 교회에 도움을 요청함으로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교회를 세우신 이유이고,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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