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마 5:6)
  • 주성호
  • 승인 2018.02.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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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제일 많이 교훈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8복의 첫 네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신앙이 점점 견고하게 되는 단계에 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처음 하나님 나라의 문 앞에 섰을 때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복잡하게 생각한다든가,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히는 한 아무 유익이 없다. 두 번째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이 열리기 위해서는 애통하며 회개하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세 번째 과정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네 번째 과정에서 의를 추구하게 된다. 마치 중병을 앓다가 일어나면 식욕이 왕성해지듯이, 죄악 세상에서 살다가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감격을 누리면 그 마음속에 의를 향한 강한 욕구가 속 사람에게서 용솟음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받는 복이 배부르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이다.

첫째: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

1) 진정한 의
의 (dikaiosuvnh, righteousness)는 본래 '정의, 공의'를 가리키는 '디케'(divkh)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헬라 윤리에서 법적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서 주로 법을 준수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미덕을 가리켰다. 성경(구약)에서 의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여 사법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처럼 의를 구원과 연결시킨 것이 이사야 52장에 나온다. 그래서 이 같은 의는 '전가(轉嫁)된 의'(창 15:6),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대속의 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이다.

보편적으로 볼 때에,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 같은 의보다는 재물이나 명예 등이 세상의 것을 더욱 추구한다. 그러나 의로운 자는 자기 의보다도 하나님의 의를 더 추구하게 된다. 눅 18:11~12에 나오는 성전에서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례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철저히 자기 의를 추구하는 모습니다.
그러나 같은 본문의 13~14절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였다. 이는 철저히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모습으로서, 자기 의를 추구하는 자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자와의 명백한 차이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주리고 목마른 자
주리고 목마름은 건강한 자가 먹고 마시지 못했을 때 느끼는 생리적인 현상으로서, 주 안에서 믿음으로 온유한 자는 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끼는 것이 영적으로 오는 생리적인 현상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에 대한 욕구가 없다면 영적으로 병든 상태라 할 수 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의는 물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 주를 찾기에 갈급하게 된다. 성 어거스틴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고, 또 시 42:1에도 동일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둘째: 배부르게 됨

1) 육신의 배부름
주림과 목마름은 문법적으로 현재 시상으로 주림과 목마른 상태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육신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릴 때는 음식을 먹고 만족하고 목마를 때는 물을 마심으로 갈증이 없어지고 만족하게 된다. 그리고 배부르다(cortavzw)라는 단어는 원래는 동물들을 먹이고 살찌게 하는 일에 사용된 말이었으나, 후대에 와서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배고플 때 아무리 배부르게 먹고 목마를 때 시원한 물로 만족하게 채웠을지라도 불과 몇 시간 지나면 다시 주리고 목마르게 되듯이, 육신의 음식이나 음료는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지언정 지속적인 것은 못 된다. 이 세상의 욕구는 무엇이든지 추구할 때 성취되므로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아도 막상 소유하고 나면 또다시 갈증이 되풀이 된다.
옛날 사람들은 배고픈 경험을 많이 했는데, 아직도 지구상에는 1.3의 사람들이 배고플 때 음식을 넉넉히 먹지 못하고서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년에 버리는 음식이 몇 조 억이라니 이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목마른 경험은 나로서는 훈련소에서 훈련 받을 때 대한(人寒) 추위 때, 한밤중에 방화수 드럼통의 얼음을 깨고는 차마 마시지 못하고 입가심만 해본 경험이 있다.

2) 영적인 배부름
육신이 주리고 목마른 것은 먹고 마시므로 해결되지만 몇 시간에 불과하다. 사람은 육신보다는 영적인 배부름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적인 배부름이 없이 완전하고 지속적인 만족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의로운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의를 구하는 곳에 진정한 만족이 있으며, 의의 만족이 바로 신앙의 대가인 것이다. 심령이 가난해지고 자기 죄에 대해 애통할 줄 알며, 마음이 온유한 자는 의를 추구하게 된다.

전에는 육신적으로만 만족하려고 욕심을 부리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부터는 그리스도로만 만족하고, 전에는 재물만 추구하고 혈안이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보니 이제는 주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고 만족하며,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경험하면서 감사하고 감격한 생활을 한다. 이런 자에게 주님은 생명의 떡과 생수를 충만하게 채워 주시니 복이 된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을 그 속에서 永生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뱅겔(Bengel) "성령을 받고도 그냥 목마름을 느낀다면 그것은 물 때문이 아니고 우리 편에 무슨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요 6:35. 51, 5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것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되는 이유이다. 의를 추구하므로 시장기나 갈증을 느끼지 않는 생활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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