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 5:8)
8.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마 5:8)
  • 주성호
  • 승인 2018.02.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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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복의 여섯 번째로 주님은 행위. 말, 생활, 환경에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 하지 않으시고 마음이 청결한 자 즉, 심성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사람에 따라서 말이나 행위 면에서 거룩해 보이고 깨끗해 보여도 마음과 동기가 불순하면 그 거룩함은 위선이요 거짓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유명한〈실낙원〉의 저자 밀턴은 "지혜를 갖추지 못한 신체는 아무리 건강하다 해도 원색적이고 폭력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육체가 지혜의 인도를 받게 될 때 높은 이상의 기초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현대는 갖가지 오염으로 청결한 마음을 가지기가 무척 어려운 시대이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돈의 지배를 받으면 돈의 노예가 되고 쾌락을 사랑하며 쫓는 자는 향락의 노예가 된다. 오늘 이런 자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청결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이다.

첫째: 마음이 청결한 자

1) 마음이란?
국어사전에는 마음이란 '지, 정, 의의 움직임 또는 그 움직임의 근원'이라고 되어 있다. 본문의 마음은 3절의 '심령'과는 달리 사람의 생각과 뜻과 감정 등이 깃드는 좌소(坐所)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마음이란 단어가 950여 회 쓰였는데, 특히 신약에서 헬라어의 '카르디아'(kardiva)는 속사람 즉 인간이 기억하고 생각하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지성적 기능: 생각하고 계획하며 기억하는 기능이다.
② 정서적 기능: 격분하고 두려워하는 기능이다.
③ 의지적 기능: 결단하고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능이다.
위의 기능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믿음의 생활과 사랑의 실천뿐 아니라 인간의 일상생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2) 청결한 마음
'청결한'(kaqaro")이란 말은 문자적으로는 '깨끗한. 순전한(pure)'이라는 의미로서, '가식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구약시대에는 청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희생 제사를 통하여 상실된 정결을 회복시켜 주었다. 희생 제사 가운데는 번제가 있는데. 번제로 드릴 짐승을 각을 떠서 재가 되도록 태우므로 죄 사함을 받는다. 이런 방법으로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로 도덕적이며 영적인 성결을 의미하여,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께 대하여 순전한 마음을 갖는 것을 가리켰다. 순전한 마음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성취된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나야 된다고 하는 것은 청결한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의 마음은 청결한 마음이다. 또한 고전 2:16의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십자가의 공로로 청결한 마음을 가졌으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한 자가 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이 가능하다.

둘째: 볼 수 있는 하나님

1)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 고로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오랫동안 인식되어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오해의 여지가 많은 구절이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 된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은 직접 볼 수 없고 하나님 아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출 33:20을 보면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엡 1:18~19 "너희 마음을 눈을 밝히사 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②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③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마음의 눈은 어떻게 밝게 되느냐?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엡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홈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시 119:18에서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말씀을 보는 눈이 띄어져야 한다. 그래야 교역자들은 설교를 바로 하고, 교인들은 문제의 해결을 말씀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다. 성도들이 신령한 눈, 곧 마음의 눈을 뜨면 하나님의 임재와 활동을 보게 된다. 이 같은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복이다.

2)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자
한마디로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다. 믿음을 가진 미국의 우주인은 처음으로 달나라에 착륙했을 때 지상을 향한 제1성(聲)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였다.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소련의 우주인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민 16:3을 보면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던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깜짝 놀라는 사건 앞에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잠 1:24~25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는 자들이 나오는데, 이들도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자들이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 하였는즉." 대상 10:13~14는 사울이 죽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자들은 결국은 죽게 되는데, 육신뿐 아니라 그 영혼의 영원한 죽음까지도 가져온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보려고 한다고 해서 보이는 하나님도 아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을 본다. 청결한 마음으로 성경말씀 볼 때, 삼라만상을 볼 때, 역사과정을 볼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활동을 본다. 이런 자들은 복 받은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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