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우리, 소인배와 대인
우리와 우리, 소인배와 대인
  • 이구영
  • 승인 2018.04.27 0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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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첫째는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 같이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우리교회, 우리학교 등입니다.
둘째는 짐승을 가두어 두는 곳을 이야기 합니다.
돼지 우리, 염소 우리 등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의미 사이에는 일치점도 있습니다.
한 우리 안에서 같은 여물통에 입을 대고 사는 짐승들 입장에서는 그들을 ‘같은 가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한 우리’ 안에 있는 그룹을 ‘우리’라고 합니다.
국가를 한 우리라고 보면 우리나라, 우리 백성은 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를 한 우리라고 보면 우리교회, 우리교인들은 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집을 한 우리라고 보면 우리식구, 우리가족은 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한 우리 안에 있으면 공동체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우리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운명체처럼 묶여서 한 우리에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겨납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에 따라서 공동체의식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밀어내고 떨어뜨리려 하는 것은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인주의 시대는 ‘우리’는 있지만 그 우리 안에 나 혼자 삽니다.
다른 그 누구도 내 영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작은 갈등이 생겨도 등을 지고 밀어냅니다.
다툼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더불어 한 우리에 살 수 없는 존재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우리에 살도록 묶어주셨다고 하는 공동운명체적 사고가 생기면 그 공동체 구성원들은 대화, 합의를 통해서 더불어의 삶을 추구하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양보도 하고 손해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가면 우리도 없어지고 이 공동체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살지 못하고 늘 내 주장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져가고, 안 보면 그만이라거나, 난 절대 양보 못해 라는 사고가 팽배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교회, 우리가족이 아니라 내 뜻대로 안되면 누군가를 밀쳐버리는, 상처를 주는, 아픔과 공격을 가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즈음에서 사람과 함께 살고 싶으셔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사람됨의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그분의 사랑하심과 용서, 양보와 십자가의 죽음!
한 우리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범위가 넓은 사람이 대인이 되고, 우리의 범위가 좁은 사람들이 소인배가 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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