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의 6두(六蠹)
감리교회의 6두(六蠹)
  • 성모
  • 승인 2018.05.19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왔다. 안경을 써야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여기 저기 안경을 갖다 놓고 사용을 한다. 어느 날 앉아 있다가 바지에 여기 저기 희끄무레 한 것이 묻어 있는 것 같아서 비벼도 없어지지 않았다. 안경을 쓰고 보니 묻은 것이 아니라 뚫어진 것이었다. 좀이 먹은 것이다. 철이 지나면 세탁을 해서 잘 보관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두었다. 장마철이 지나면서 좀이 먹어서 여기 저기 뚫려 있었다. 결국 옷을 더 입을 수가 없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좀벌레를 한자로 蠹(두)라고 한다.

한비자는 오두를 말했고, 이익은 육두를 말했다. 나라를 좀 먹는 좀벌레들을 다섯 가지로, 여섯 가지로 들어 말했다.

한비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가지 벌레를 빗대어 5두라고 했다.
1. 선왕의 도리와 인의를 내세우는 현실을 부정하는 유학자
2.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종횡가
3. 멋대로 날뛰는 협객(묵가후예들)
4. 뇌물을 바쳐 병역을 기피하는 병역기피자
5. 비양심적인 상공민

성호 이익은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좀범레를 말했다.
1. 노비제도
2. 과거제도
3. 양반문벌제도
4. 기교와 방술
5. 승려
6. 게으름뱅이

감리교회안에는 어떤 좀벌레가 있을까? 손가락으로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나 제도로 봐도, 사람으로 봐도 많은 좀벌레들이 있다. 완벽한 제도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늘 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혁이 되지 않으니까 문제가 된다. 왜 개혁이 되지 않나? 기득권세력 때문에 그렇다. 변화를 원치 않고 현 상태 그대로 가기를 원해서 그렇다.

감리교회를 좀 먹는 대표적인 좀벌레로 뭉뚱그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감독제도
2. 선거제도
3. 무능한 본부
4. 신학교 일부교수
5. 정치목사, 정치장로
6. 부도덕한 목사

이런 좀벌레들이 감리교회를 추락시키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25만 명이 준 이유가 이런 좀벌레가 구석구석에서 활약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감독제도

감리교회의 정체는 감독제도이다. 감독제도는 회중제나 장로제와 달리 감독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감독이 되면 권력과 명예를 함께 얻게 된다. 연회를 들여다보면 힘깨나 쓰는 목사들, 주로 대형교회 목사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교회가 크니 여기저기 광고를 하게 되고, 중요한 자리를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 위에 개인적인 명예욕이 있으면 연회에서 여기저기 관여하면서 정치적인 줄을 잡게 된다. 그렇게 같은 줄에 있는 사람들끼리 순번이 정해지고 감독에 출마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 선거공탁금, 선거참모들이 쓰는 경비 같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여기에서 그치면 좋은데 유권자들에게 밥을 사고, 유력한 유권자를 불러서 설교를 시키고 수고비를 준다. 마지막에는 돈으로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감독직을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 성직매매라고 볼 수 있다. 성직매매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일 뿐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교회 앞에서 범죄이다.

목회자들이 감독을 꿈꾸면서 여러 해 동안 이 작업을 한다. 여러 단체를 만들기도 하고 소속하기도 하고, 심지어 선교회를 만들어 정치를 한다. 그렇게 공을 들여서 감독이 되면 그 다음 타자가 뒤를 이어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감독당선이 발표되자마자 다음 선거운동이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유력한 목회자들이 이렇게 감독직을 향해 달리면서 목회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식어간다. 이렇게 목사 본연의 목회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감독선거제도이다. 이렇게 목회자들을 목회로부터 서서히 분리시킨다. 그 결과 교회가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목회자 개인적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감독이 갖는 권한을 축소시키고, 분산을 시켜야 한다. 한 달에 300만원씩 활동비를 주는 것, 파송권 등 여러 가지 제왕적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같은 경우는 노회장에 나서지 않아서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노회장이 되어도 별 권력이 없고, 누리는 것이 없고, 시간과 경비와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면 누가 노회장이 되려고 할까? 감독직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되면 누가 감독이 되려고 할까? 특별히 봉사해달라고 부탁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어떤 분들은 감독제는 감리교회의 전통이기에 명칭을 바꿔서는 안 된다고 한다. 존 웨슬리는 감독제를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명칭을 고집하기보다 감리교회의 정신을 붙잡는 것이 필요하다.

목회지형, 혹은 선교지형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별 대책이 없다. 감독제는 중앙집권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감독에 의해 쉽게 변할 수 있는 정체이다. 그런데도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감독제는 왜 필요한 것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