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지혜 전수자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 전수자
  • 김재용
  • 승인 2018.06.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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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의 황혼의 미학이라는 책은 핸리 나웬의 글로 시작한다.

외딴 산속 한 마을에, 노인을 제물로 바친 다음 먹어 버리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다가 노인이라곤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고, 대대로 내려오던 관습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주민들은 그들이 다 모일 수 있는 큰 집을 짓기로 하고 나무를 베어 냈다. 그런데 통나무의 아래 위를 구별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대들보를 거꾸로 세우면 집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었다. 그때 어떤 젊은이가 더 이상 노일을 잡아먹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해결책을 내놓겠다고 제안하자 다들 흔쾌히 약속했다. 젊은이는 오랫동안 숨겨 놓았던 자기 할아버지를 모시고 나왔다. 그리고 노인은 통나무의 아래위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저자는 “오늘날 이 전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고 했다. 지혜로운 노인들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이 바른가를 가늠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내다보았다. 산업화에서 IT 산업의 후반부를 경험하면서 소위 세계 4차 혁명의 시작을 경험하게 되었다. 인공지능 AI의 발전과 중국을 비롯한 태국과 인도의 산업의 부흥은 대한민국 경제 여건을 흔들어 놓았다. 그것은 청년 실업이다. 그러나 청년 실업을 이야기 하면 노인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마치 청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어른의 자리에서 책임지고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 그래서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목 “어쩌다 어른”이라는 것 같이, 어느 덧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는데, 어른으로서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필요도 있다.

4차 산업사회가 된다는 것은, 단순 작업 환경의 근로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창의적이며 독창적인 모습으로 탈바꿈이 요구된다. 이런 환경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단순 지식이 아닌 노인의 통나무 위 아래를 구별하는 지혜를 갖고 있는 것과 같이, 젊은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한다. 어른 역할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구전되어 내려오는 지혜를 모아서 다음 세대를 위해 전달할 사명이 있다.

아울러 노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모습이라면, 우리는 다른 면도 바라보아야 한다. 왜 우리는 늙음을 거부하는 것일까? 늙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싫어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죽음이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늙음은 곧 다가올 죽음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아닌 기독교 교인들만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매일 매일의 삶에 충실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는가? 그것은 시간이 흘렀어도. 자신들이 지혜를 계속 구전으로 내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 구전으로 전달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나이 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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